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가 19개월 연속 상승해 지난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6∼9개월 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장기 추세를 강하게 웃돌고, 성장세도 추세 성장률을 웃돌 가능성을 가리키는 신호다.
韓 OECD 선행지수 75개월 만에 세계 1위…상승폭은 5개월째 축소
OECD 한국 경기선행지수가 19개월 연속 올라 지난달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반도체 호황이 배경으로 꼽히지만 상승 폭은 5개월째 줄었고, 유가·금리 급등에 경기 조기 정점 우려와 정부 반론이 엇갈린다.
다만 CLI 상승 폭이 지난 3월부터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최근 중동전쟁 격화 등으로 국제유가와 국채금리가 치솟는 악재가 나타나면서, 경기 확장세가 주춤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하위권에서 1년 만에 1위…데이터처 지수는 25년 11개월 만에 최고
13일 OECD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CLI는 102.87로 2021년 5월(102.88) 이후 5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OECD CLI는 경기 전환점을 빨리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지표로, 6∼9개월 후 경기 흐름을 미리 가늠하는 데 쓰인다. 기준선인 100보다 높으면 향후 GDP 수준이 장기 추세를 웃돌고, 100보다 낮으면 장기 추세를 밑돌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한국의 CLI는 지난해 1월(99.14)까지 하락하다가 2월 반등을 시작했고, 지난해 11월 100.12로 100을 넘어섰다. 8월 한국의 CLI는 OECD가 공개한 17개국 중 1위다. 한국이 1위를 차지한 것은 2020년 5월(99.46) 이후 6년 3개월 만이다.
지난해 9월까지는 17개국 중 16위로 최하위권이었지만 이후 급격히 올라 올해 2월 3위에 진입했고, 7월에는 멕시코를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지난달엔 8개월간 자리를 지키던 브라질까지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하는 경기 예측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비슷한 흐름이다. 9개월 연속 상승해 지난 7월 104.2를 나타내며 2000년 8월(104.6) 이후 25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OECD CLI는 제조업 업황 전망, 주가, 투자재 제조업 재고, 재고출하비율, 장단기 금리차, 교역조건 등 6개 지표로 구성된다. 한국 지수를 끌어올린 주요 요인으로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이 꼽힌다. 교역조건은 수출품 가격을 수입품 가격으로 나눈 비율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입품에서 비중이 가장 큰 것이 유가이고 수출품은 반도체인데, 반도체 가격이 유가보다 훨씬 빨리 올라 교역조건이 좋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수출은 반도체·컴퓨터·화장품 수출 확대 등으로 1년 전보다 68.7% 증가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CLI가 좋게 나오는 것은 결국 반도체 덕분"이라며 "미국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덕에 괜찮아 보일 수 있어도 유럽이나 일본은 그마저 없어 숫자가 높게 나오기 어렵다. 한국이 1위인 것이 통계상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상승 폭은 5개월째 축소…"고점 임박" vs "레벨이 높은 탓"
향후 경기를 전망하는 이들 지표의 상승 속도는 꺾이고 있다. OECD 한국 CLI의 전월 대비 상승 폭은 3월 0.43포인트(p)를 정점으로 4월 0.41p, 5월 0.37p, 6월 0.28p, 7월 0.15p, 지난달 0.06p로 5개월 연속 축소됐다. 데이터처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전월차도 6월 0.9p에서 7월 0.4p로 줄었다.
대외 악재도 겹친다. 중동전쟁 격화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물가 상승 우려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크게 튀었고, 미국의 국채금리도 치솟았다. 그러자 국내 채권 금리도 급등했다. 지난 11일 국고채 3년물 금리가 4%를 넘어서며 2023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4% 선을 웃돌았다. 국고채 10년물도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도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기업의 자금조달과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경기 확장 속도가 점차 느려지며, 종국에는 경기가 둔화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석병훈 교수는 "선행지표상으로는 경기가 팽창하는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어서 고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며 "유가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아 교역조건이 나빠지면 CLI 상승세가 더욱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교역조건이 악화하면 정점에 조기에 다다르고, 그러면 얼마 안 있어 우리나라 경기도 실제로 정점을 찍을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준석 교수는 "아직 정점이라고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정점이 곧 올 수도 있다고 본다"며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가속화되면 반도체 호조가 계속되면서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미 정점을 지났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선행지수의 고공행진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하며, 상승 폭 축소를 경기 하강 신호로 읽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입장이다. 재정경제부는 11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9월호에서 "견조한 경기회복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선행지수는 OECD 기준이든 데이터처 기준이든 매우 높은 수준으로,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며 "100을 크게 상회하는 상황에서 전월차 상승 폭이 둔화됐다고 앞으로 경기가 꺾인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높은 수준에서 지수가 안착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양호하고 견조한 성장 흐름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유가와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관해서도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은 분명하지만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차가 있다"며 "불확실성 확대를 예의 주시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