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2012년 고(故)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14년 만이다. 한국 영화의 심사위원대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창동 '가능한 사랑', 베네치아 심사위원대상…한국 영화 최초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의 심사위원대상 수상은 처음이며, 경쟁 부문 수상은 2012년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Rows of empty red seats in a darkened movie theater, awaiting audience. · 사진 Tima Miroshnichenko / Pexels · 해당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사진 원문 보기
현지시간 1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팔라초 델 시네마(영화의 궁전)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가능한 사랑'이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심사위원대상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이은 영화제의 주요 상이자 2등 상이다.
이 감독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이다. 당시 '오아시스'는 이 감독의 감독상과 함께 주연 문소리에게 신인배우상을 안겼다. 이 감독은 2010년 칸영화제에서 '시'로 각본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심사위원대상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 경력을 더했다. 그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 가운데는 2002년 문소리의 베네치아 신인배우상, 2007년 전도연의 '밀양' 칸 여우주연상 이력이 있다.
수상대에 오른 이 감독은 "수많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으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특히 영화를 기다리느라고 매일 술을 마셔야 했던 제작자 이준동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에 생명력을 준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분에게 감사드린다. 이 상은 여러분들의 것"이라며 주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 감독은 10여 년 전 해고 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려다가 제작 준비 단계에서 접었고, 이야기는 오랜 기간을 거쳐 '가능한 사랑'으로 완성됐다.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는 이 감독의 전작 '시'(2010), '버닝'(2018) 등을 만든 제작자로 이 감독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첫 넷플릭스 영화다. 부유한 남편(조인성 분)을 둔 다큐멘터리 감독(조여정)이 해고 노동자 부부(설경구, 전도연)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계급적 배경이 다른 이들이 서로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6일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뒤 약 7분간 기립박수를 받았고, 외신 호평이 이어졌다. 폐막식에 앞서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도 받았다. 국제비평가연맹은 홈페이지를 통해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으로 '가능한 사랑'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미묘한 역학 게임을 완벽한 속도감과 여러 층위로 그려낸다"며 "착취, 계급, 사랑, 욕망, 소유, 이야기의 윤리를 탐구한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인 홍콩 영화 감독 두치펑(두기봉)은 폐막식 뒤 기자회견에서 "이창동 감독작 중 가장 원숙한 작품"이라며 "영화에 담긴 모든 디테일을 좋아한다. 나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마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Woman Unknown)에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덴마크를 배경으로, 독일군 병사와 연인 관계였다는 과거를 숨긴 젊은 여성 마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연 마틸데 아르셀이 여우주연상(볼피컵)도 받아 2관왕에 올랐다.
감독상(은사자상)은 일리야 흐르자놉스키 감독의 '다우'(DAU)가 받았다. 심사위원특별상은 유발 아브라함·레이철 쇼르 감독의 '나자'(NAZA)가 차지했다. 두 감독이 '노 아더 랜드'(No Other Land·2024)에 이어 만든 '나자'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대량 살상을 가능하게 한 이스라엘의 시스템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공식 상영 후 25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올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각본상은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앙 봉 프티 솔다'(A Good Little Solider)에 돌아갔다. 남우주연상(볼피컵)은 '와일드 호스 나인'(Wild Horse Nine)의 존 말코비치가 수상했다. 신인여우상은 '어 플레이스 투 힐'(A Place To Heal)의 말루 케비지가 받았다.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수상한 '가능한 사랑'은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상) 국제 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내년 오스카상에 도전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수상 소식을 알리며 "감독님과 모든 배우·제작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앞으로도 한국 영화의 빛나는 여정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뤼미에르 서밋에서 감독님과 배우분들을 뵀을 때 작품에 대한 현지의 뜨거운 관심을 직접 전해 들었다"며 "그때의 기대가 좋은 결실로 이어져 더욱 기쁘다"고 했다. 이어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 영화의 다양성이 더욱 넓어지고 좋은 작품들이 세계 관객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3일 SNS를 통해 "이창동 감독님, 신작 '가능한 사랑'의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 수상을 온 마음으로 축하드린다"며 "이 눈부신 쾌거로 한국 영화사에 또 하나의 위대한 이정표를 세우셨다"고 전했다. "끊임없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감독님의 깊은 예술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계 영화인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며 "이렇게 늘 한국 영화계의 큰 자랑이 되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