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선거 앞두고 美 경유 사상 최고가…수출금지 법안까지 등장

미국 평균 경유 가격이 갤런당 6.4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공화당 의원이 내년 1월까지 수출을 한시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행정부 장관들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고, 전문가들은 통제가 오히려 가격을 더 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인프라 피격으로 경유(디젤) 글로벌 공급난이 가중되면서, 미국 정부가 경유 가격 통제를 위해 수출금지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팀 버쳇 하원의원(공화·테네시)은 미국 내 경유 가격 급등에 대응해 내년 1월까지 경유 수출을 한시 금지하는 법안을 전날 발의했다. 이에 앞서 존 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사우스다코타)도 경유 수출금지 방안 검토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적이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장관들도 최근 공개 발언에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이달 초 CBS 인터뷰에서 ‘경유 수출금지 시행 가능성을 배제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명확히 부인하는 취지로 답하지 않았다.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는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은 이번 주 주요 20개국(G20) 장관회의에서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는다’면서도, 실제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판단되면 수출 금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간 수출금지 가능성을 일관되게 부인해 온 미 행정부가 종전보다 누그러진 태도로 바뀌었다고 볼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수출 통제는 단기적으로 자국 내 물량을 늘려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다만 에너지 기업들이 가격 변화에 맞춰 공급물량을 줄이면 장기적으로는 의도치 않은 가격 상승만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이런 부작용에도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수출통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11월 중간선거를 한 달여 남기고 경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해 당장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어서다.

미국의 평균 경유 가격은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6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이번 주에도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17일에는 갤런당 6.40달러로 사상 최고가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이미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 피격까지 겹쳐 가격 급등세에 기름을 부었다. 송유관 가동 중단 이후 사우디 서부 홍해 연안 정제시설들은 원유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걸프 연안은 물론 중서부와 캘리포니아 일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정제시설을 보유해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편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경유 가격이 계속 오르면 트럭 운송을 비롯한 산업 활동 전반에서 생산비용이 늘고 광범위한 물가 상승을 일으킬 수 있어, 선거 표심을 좌우할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경유 가격이 현재 가장 큰 우려 사항"이라며 백악관이 경유 가격 상승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가을 수확철을 맞은 미국 농가의 농기계 연료 수요가 늘고, 겨울이 빠른 북동부에서 난방유 보일러까지 가동하기 시작하면 경유 가격 오름세는 한동안 더 이어질 것이라고 WSJ은 내다봤다.

경유 수출금지가 실제로 시행되면 미국 내 재고 수준과 수출량을 연동하는 부분적 수출금지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상업용 재고가 일정 수준 아래로 줄면 정유사의 수출 할당량도 함께 줄어드는 재고연동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리포우 오일어소시에이츠의 앤디 리포우 대표는 경유 수출 통제를 시행하면 수요 감소에 맞춰 정유사들이 정유 처리량을 줄이게 돼 휘발유나 항공유 등 다른 연료 제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포우 대표는 "여러 석유류 품목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주유소 기름값은 더 오를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에너지회사 컨티넨털 리소시즈의 해럴드 햄 창립자도 "수출 금지는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가격만 더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에너지 특사를 지낸 데이비드 골드윈 골드윈글로벌스트래티지스 대표는 수출금지 조치에 대해 "몇 달 효과를 보고 나면 가격은 다시 오를 것"이라며 "행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원칙을 지킬 의지가 있느냐이다"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